졸업하는 해에 뉴욕의 디자인 잡지 ‘Print’의 공모전이 있었습니다. 미국 전역의 아트 전공 졸업예정자가 응모할 수 있고, 최우수작품은 Print의 표지를 장식합니다.

저는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의 음표를 베토벤 라이트, 베토벤 볼드 등의 이름을 붙여 10종류 이상의 레터링을 음표로 표현하여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뉴욕의 아트 디렉터 클럽 장려상을 받아 음악협회에서도 칭찬 편지를 받았습니다. 가장 기뻤던 것은 ‘내 작품이 처음으로 공개된 것’이었습니다. 서점에 가면 내 디자인으로 표지를 만든 책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졸업이 가까워졌을 때 세계적으로 유명한 랜도 어소시에이츠 미국 본사의 부사장이 아트센터에 찾아왔습니다. 15~6명의 학생이 인터뷰를 했고, 이탈리아계 미국인 학생과 저 두 사람이 샌프란시스코로 가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랜도 어소시에이츠 본사는 페리 보트를 개조한 것이었습니다. 5층 건물 정도의 넓이로 안에 들어가면 흔들렸습니다. 멋졌습니다. 여러모로 생각하여 랜도에서 일하기로 결정하고, 전문가로서의 첫발을 뗀 것이26살 때였습니다.

처음으로 한 일은 SC존슨의 샴푸와 컨디셔너 패키지였습니다. 내 디자인이 제품이 되어 점포에 진열된 것을 봤을 때에는 너무 기뻐서 일본에 보내려고 24개입 박스째 사서 돌아왔습니다.
랜도 어소시에이츠는 CI일도 많이 했습니다. 후지 필름이 마크를 사용할 때의 디자인 매뉴얼 제작에도 참여했습니다. 하쿠쓰루 주조의 학 마크도 제 디자인입니다. 미즈노, 와코루 등도 작업하였습니다. 일본 기업에는 미국인보다 일본인의 감각이 반응이 더 좋았고, 배울 점도 매우 많아 즐겁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2년이 지나자 사내에서 인정받게 되었고 미합중국의 영주권도 받았습니다. 결혼을 결정한 것도 이 무렵입니다.